Seunghoon Choi

축의금의 사회실험

먼저 건넨 호의와 조금씩 확인하는 신뢰

축의금 봉투와 생일 케이크 곁에 놓인 휴대전화의 삽화

결혼을 앞둔 지인이 연락해왔다. 안부를 묻고 가벼운 이야기를 주고받는 연락이 두 달 넘게 이어졌다. 대화는 평소보다 길었고 말투도 친절했다. 나는 처음 연락이 온 순간부터, 축의금을 받기 위해 미리 가까워지려는 연락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한번도 이거 말고 다른 쪽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결혼을 축하하고 두 사람이 서로 아끼며 살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축의금도 미리 보냈다. 상대는 아직 결혼식 전인데 벌써 보냈느냐며 고맙다고 했다.

그 뒤, 결혼식이 열리기 전에 내 생일이 왔다. 메신저에는 생일이 표시돼 있었다. 그러나 두 달 넘게 대화를 이어왔던 그 지인에게서는 생일을 축하하는 연락이나 반응이 없었다. 내가 축의금을 아직 보내지 않았더라도 같았을까. 역시나 싶었다. ‘사람이 결국 변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틀리기를 바란 마음

내가 처음부터 의심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그 사람이 자기 필요를 먼저 챙기는 모습을 여러 번 봤다. 돈을 보내는 순간에도, 받고 난 뒤에는 내 안부를 챙기지 않을 가능성을 50%쯤으로 보고 있었다. 두 달 넘게 대화를 나눴다고 해서 그 사람을 새롭게 믿게 된 것은 아니었다. 의심하면서도 먼저 잘해본 것이었다.

그래도 내가 틀렸으면 했다. 이미 겪은 일만으로 앞으로의 행동까지 단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충분히 친절하게 대했을 때는 다른 반응을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인간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는 말은 그 정도의 마음이었다. 생일에 아무 반응이 없었을 때도 뜻밖의 일을 당했다는 느낌보다, 이번에는 다르기를 바랐던 일이 예상대로 됐다는 서운함이 컸다.

그렇다고 축의금의 대가를 청구하는 것은 아니다. 돈을 돌려받고 싶은 마음과 나도 관심을 받고 싶은 마음은 구분할 수 있다. 나는 그 사람의 중요한 날을 챙겼고, 내 생일에도 짧은 인사 정도는 기대했다. 그 기대가 있었다고 해서 내가 전한 축하까지 거짓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받은 뒤의 안부

내가 마음에 걸렸던 것은 두 장면의 차이였다. 결혼을 앞두고는 두 달 넘게 연락이 이어졌고, 축의금을 보낸 뒤 맞은 생일에는 짧은 인사도 없었다. 생일을 놓칠 사정이 있었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그 가능성을 생각할 때마다 내 서운함까지 없애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상대에게 사정이 있을 수 있듯, 나도 그 관계에 대한 기대를 고칠 수 있다.

그 모든 연락이 축의금만을 위한 것이었다고 확정할 수는 없다. 같은 상황에서 축의금을 보내지 않았다면 어땠을지 비교할 수도 없으니, 엄밀한 실험보다는 개인적인 관찰에 가깝다. 다만 연락이 길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관계도 좋아졌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더 잘해주면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줄이기에는 충분한 경험이었다.

내가 먼저 잘해주면 관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는, 상대도 내 호의에 응답할 것이라는 기대가 들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축하를 전할 수 있을 뿐, 상대가 나를 챙기게 할 수는 없다. 그 사람에게서 관심을 받지 못할 때마다 내가 더 잘해줄 방법을 찾는다면, 관계를 이어가는 책임을 혼자 떠안게 된다. 이번에는 내가 더 무엇을 해줄지 고민하기 전에, 상대도 이 관계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기로 했다.

먼저 다가가고 조금씩 믿는 일

나는 여전히 먼저 연락하는 쪽이고 싶다. 서로 기다리기만 하다가 멀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독해지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안부를 물을 때가 있어야 한다. 그렇게 내가 먼저 관계를 시작할 기회를 만들려 한다.

이번에 고친 것은 그다음이다. 먼저 호의를 보이되, 큰 시간을 들여 돕거나 중요한 부탁을 맡기는 일은 상대도 관계를 챙기는지 본 뒤에 늘리려 한다. ‘선제적 호의와 조건부 심화’, 또는 ‘신뢰의 분할 지급’이라고 부를 수 있다. 같은 금액으로 보답받겠다는 계산은 아니다. 내 말을 기억하고 약속을 지키며, 내 거절을 존중하는 행동을 보고 조금씩 더 믿겠다는 뜻이다.

인간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렇다고 그 기대를 지키려고 내가 본 행동을 못 본 척하고 싶지도 않다. 나는 앞으로도 먼저 안부를 물을 것이다. 다만 내가 먼저 잘해줬으니 언젠가는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더 큰 도움을 약속하지는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