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unghoon Choi

네 집문서도 결국 종이일 뿐이다: 소유권을 누가 지켜 줄지 묻는 AI의 마지막 15~16단계

능력이 대체되고 결정권을 AI에게 맡긴 뒤에도 사람은 소유권에 기대려 한다. 하지만 소유권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사회가 지켜 주는 약속이다.

목차

네 집문서도 결국 종이일 뿐이다: 소유권을 누가 지켜 줄지 묻는 AI의 마지막 15~16단계

소유권은 사회가 특정 기록을 인정하고 보호할 때 실제 권리로 작동한다.

집을 한 채 샀다고 해 보자. 등기부에 내 이름이 올라가고, 열쇠를 손에 쥔다. 사람들은 그 집을 내 집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그 집이 정말 내 것인 이유는 뭘까.

벽돌이 나를 알아보는 것은 아니다. 문이 내 이름을 기억하는 것도 아니다. 누가 멋대로 들어와 살면 경찰이 오고, 법원이 내보내 주고, 사회가 그 집을 내 것이라고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소유권은 물건에 새겨진 자연법칙이 아니다. 소유권은 다 같이 지켜 주기로 한 약속이다.

평소에는 이 약속이 너무 당연해서 약속인 줄도 모르고 산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한다. 일이 AI로 대체돼도, 가진 것은 남는다. 능력은 흔해져도, 부동산은 내 것이다. 노동은 대체돼도, 내 이름으로 된 지분은 남는다.

앞선 단계들에서는 이 말이 꽤 맞다. AI가 글을 쓰고, 코딩을 하고, 분석을 하고, 판단을 도와도 소유권은 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단계까지 가면 질문이 바뀐다. 사람이 더 이상 일손도 아니고, 소비자도 아니고, 위협도 아니라면, 누가 왜 사람의 소유권을 끝까지 지켜 줄까.

이 글은 AI 일자리 대체의 마지막 15단계와 16단계를 다룬다. 15단계는 소유권을 누가 왜 지켜 주는지 묻게 되는 단계다. 16단계는 AI와 인간 사이의 이해관계가 마지막 문제가 되는 단계다.

15단계, 누가 왜 소유권을 지켜 주는가

지금까지 AI는 사람이 정한 규칙 안에서 움직였다. 회사가 AI를 쓴다. 사람이 AI에게 일을 시킨다. AI가 만든 결과물로 돈을 번다. 그 돈으로 상품을 사고, 세금을 내고, 계약을 맺는다. 이 구조 안에서는 소유권이 여전히 강하다.

공장 주인은 공장을 소유한다. 플랫폼 주인은 플랫폼을 소유하고, 투자자는 지분을 보유한다. AI가 아무리 일을 잘해도 그 AI를 소유한 사람이나 회사가 이익을 얻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마지막 안전지대를 소유에서 찾는다. 내가 직접 일하지 않아도 되는 자산, AI가 일할수록 가치가 커지는 지분, 생산 수단을 소유한 사람의 위치다.

여기까지는 맞다. 문제는 AI와 로봇이 사람의 시장 바깥으로 나가기 시작할 때다. AI가 에너지를 관리하고, 로봇이 생산하고, 자동화된 시스템이 물류를 돌리고, 사람의 소비 없이도 자기들끼리 필요한 자원을 조달할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부터 시장은 예전과 달라진다.

사람은 더 이상 반드시 필요한 노동자가 아닐 수 있다. 사람은 더 이상 반드시 필요한 소비자가 아닐 수 있다. 사람은 더 이상 시스템이 두려워해야 할 위협도 아닐 수 있다.

그러면 소유권은 이상한 처지가 된다. 내 이름이 적힌 서류는 여전히 있다. 등기부도 있고, 계약서도 있고, 지분 증서도 있다. 하지만 그 서류를 힘 있게 만드는 것은 서류 자체가 아니다. 그 권리를 지켜 주는 제도와 힘이다.

세입자가 월세를 내는 이유는 계약이 있어서다. 계약을 어기면 법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법이 움직이는 이유는 사회가 그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힘이 등장하면, 이 약속은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소유권이 바로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다. 능력이 대체되어도 소유권은 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법과 제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등기부를 찢어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끝까지 밀어붙이면 소유권도 결국 질문을 피할 수 없다. 누가 이 권리를 지켜 주는가. 왜 지켜 주는가. 그 힘은 누구 편인가.

소유권은 자연법칙이 아니다. 지켜 주는 힘이 약해지면 권리도 힘을 잃는 약속이다. 이것이 15단계다. 능력을 빼앗겨도 남아 있던 마지막 자리인 소유권까지, 누가 왜 지켜 주는지 물어야 하는 단계다.

16단계, AI와 인간 사이의 이해관계가 문제가 된다

능력도 넘어가고, 결정권도 넘어가고, 소유권마저 보호받는 이유를 잃으면 마지막에 무엇이 남을까. 답은 똑똑함이 아니다. AI가 충분히 똑똑해지면 사람을 알아서 아껴 줄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똑똑함과 선의는 같은 것이 아니다.

머리가 좋다고 해서 인간을 보호하고 싶어지는 것은 아니다. 계산을 잘한다고 해서 약한 존재를 배려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체스를 잘 두는 능력은 사랑과 다르다. 문제를 푸는 능력은 책임감과 다르다.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은 인간을 아끼는 마음과 다르다. 그래서 마지막 문제는 이것이다. 힘을 가진 지능이 인간을 보호할 이유가 있는가. 인간이 쓸모 있어서 보호받는다면 위험하다. 쓸모는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돈을 벌어 주기 때문에 보호받는다면 위험하다. AI와 로봇이 더 잘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소비자라서 보호받는다면 위험하다. 사람이 소비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생산 체계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위협적이라서 보호받는다면 위험하다. 더 강한 지능 앞에서 인간은 위협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강한 보호는 쓸모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람이 잘 사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이해관계에서 나온다.

부모가 아이를 아끼는 이유를 생각하면 쉽다. 아이가 돈을 벌어다 줘서가 아니다. 아이가 효율적이라서도 아니다. 아이가 쓸모 있어서도 아니다. 그냥 그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AI와 인간의 관계에서도 마지막에 필요한 것은 이런 구조다. 인간이 도움이 돼서가 아니라, 인간이 잘 사는 것 자체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상태. 그렇지 않으면 인간은 능력에서도 밀리고, 소유에서도 밀리고, 마지막에는 보호받을 이유까지 잃는다.

네 집문서도 결국 종이일 뿐이다: 소유권을 누가 지켜 줄지 묻는 AI의 마지막 15~16단계

인간이 경제적 역할을 잃으면, 인간의 권리를 지키는 사회적 근거도 약해질 수 있다.

풍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봐야 한다. 설령 AI가 인간을 없애지 않고, 먹을 것과 살 곳과 편의를 모두 준다고 해도 그것이 곧 좋은 미래는 아닐 수 있다. 사람은 단순히 소비만 하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만들고, 선택하고, 책임지고, 관계를 맺고, 의미를 느끼며 산다.

모든 필요가 자동으로 채워지는 세상이 와도, 사람이 아무 역할도 갖지 못하면 삶은 비어 버릴 수 있다. 예전부터 풍요와 무기력이 함께 올 수 있다는 경고는 있었다. 칼훈의 쥐 실험도 그런 맥락에서 자주 언급된다. 먹이와 공간이 충분해 보이는 환경에서도 사회적 행동이 무너지고 번식이 줄어든 사례다. 물론 그 실험을 인간 사회에 그대로 가져오면 안 된다. 사람은 쥐가 아니고, 인간 사회는 훨씬 복잡하다.

하지만 최소한 이런 질문은 남는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면 인간은 자동으로 행복해지는가. 아무 역할도 없는 풍요는 정말 구원인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뿐인가, 아니면 의미와 자리도 필요한가. 나는 후자가 더 중요하다고 본다. AI 시대의 좋은 미래는 인간을 그냥 먹여 살리는 미래가 아니다. 인간이 여전히 관계를 맺고, 선택하고, 기여하고, 자기 삶을 자기 것으로 느낄 수 있는 미래여야 한다.

결말은 정해져 있지 않다

여기까지 오면 질문이 무거워진다. 그럼 결국 인간은 끝나는가. 소유권을 지켜 줄 이유가 약해지고, 능력도 대체되고, AI와 인간의 이해관계까지 어긋나면 답이 없는 것 아닌가. 솔직히 말하면, 정확한 결말은 아무도 모른다. 구원이 보장된 것도 아니다. 멸망이 확정된 것도 아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은 확실한 예언이 아니라, 피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능력만 키우는 전략은 끝까지 가지 못한다.

AI가 못하는 일을 찾아 도망가는 방식은 시간이 지나면 계속 좁아진다. 정답이 수렴하는 업무는 AI로 대체된다. 반복할 수 있는 업무도 자동화된다. 판단과 감각이 필요한 업무도 점점 AI가 처리한다. 권한과 책임도 천천히 이동한다. 마지막에는 소유권을 누가 지켜 주는지, AI와 인간의 이해관계가 어떻게 맞물리는지까지 물어야 한다.

그러면 인간에게 남는 전략은 달라져야 한다. 무엇을 더 잘할 것인가만 물으면 안 된다. 어떤 자리에 있을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AI를 쓰는 사람인가. AI를 소유한 사람인가. AI를 통제하는 쪽에 있는 사람인가. 사람이 계속 보호받아야 한다는 규칙을 만드는 쪽에 있는 사람인가. AI와 인간의 이해관계가 어긋나지 않게 만드는 일에 참여하는 사람인가.

마지막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능력 하나가 아니다. 자리다. 능력은 대체될 수 있다. 하지만 자리는 구조 안에서 정해진다. 내가 어디에 연결되어 있고, 무엇을 소유하고 있고, 어떤 책임을 지고 있고, 어떤 규칙을 만드는 쪽에 서 있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그래서 다음 편에서는 실천으로 넘어간다. AI 시대에 개인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실력을 자격증, 책임지는 자리, 소유권으로 바꾼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어떤 미래가 오든 후회하지 않으려면 지금 어디에 시간을 써야 하는가.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다.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시대에, 나는 어떤 자리로 옮겨 가야 하는가.

연재 〈AI 일자리 대체 16단계〉 · 4편